사천신문 | 봉화대(생활광고) | 사이버사천
2023. 01.31 05:56

추천리(楸川里)

◆본래 곤양군 초량면에 지역으로서 가리골 또는 추동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추천리라 해서 사천군 곤명면에 편입되었다. 오사, 추동, 신산 3개 마을로 형성되었다.

◆가리골 : 추천리를 일컬음.

◆감시등 : 오봉동 서쪽에 있는 산. 여자의 음부처럼 생겼는데 밑에서 물이 나서 저수지를 만들었음.

◆거랭이골 : 신산 서쪽에 있는 골짜기. 골이 짧아서 비만 그치면 물이 말라 버린다 함.

◆구시배미 : 오사 남쪽에 있는 논. 모양이 소죽통(구시)처럼 생겼다 함.

◆까마귀등 : 오사 남쪽에 있는 산.

◆깨볶을재 : 신산 서쪽에 있는 고개. 깨밭이 많이 있었음.

◆묘종골 : 오산 남쪽에 있는 골자기.

◆무듬걸 : 신산 북쪽에 있는 산.

◆사자등 : 오사 동쪽에 있는 산.

◆신산(新山) : 다솔사 입구의 양조장에서 절 아래까지 이어져 있는 마을로서 추천리의 새동네마을과 용산리의 절골 마을을 합한 동리(洞里)이니 새 동네의 신(新)자와 용산의 산(山)자를 넣어 신산(新山)이라 한 것이다. 유서 깊은 다솔사의 진입마을이므로 참배객, 관관객, 등산객 등의 내왕이 많은 곳이기에 동민들은 그 주변의 자연보호와 환경정화에 관심깊게 노력하고 있다. 역사의 인물인 한용운, 김범부, 김법린, 최범술, 김동리 등은 우리나라 독립운동과 문단의 거성이다. 이들이 일제의 감시를 피하기 위해 은신하여 산 곳이 신산(新山)이다. 김동리의 대작인 등신불(等身佛)은 다솔사를 소재로한 작품이라고 한다. 1978년 관광지 취락구조개선 시책으로 10호(戶)의 주택개량을 하였고 곤명 농업협동조합의 격납고가 있다. 1950년 6 ? 25가 발발하자 서울의 동흥중학교가 다솔사로 옮겨 3년간 운영을 하여 현재의 장년급 중등교육 출신 거의가 이 학교 출신이다. 이맹산 이무기가 움직이면 이웃마을에서 장님이 하나씩 생김으로 도사가 이를 퇴치코자 불돌(火石)을 이무기 못에 넣음으로써 용이 황급히 진교쪽으로 달아날 적에 용산 옆골을 지나쳤다는 전설도 있다.

◆쑥등 : 묘정골위 서쪽에 있는 산.

◆오사(梧紗) : 곤명의 최남단으로 곤양성내에서 북쪽으로 2.5km이며 면소재지에서 3km지점이고 곤명과 곤양의 면계(面界)를 이루고 있다. 본동(本洞)과 오봉으로 형성된 마을로 뒷산이 장재산이고 동네쪽으로 뻗은 능선이 “새우등”이다. 남쪽에는 오봉산이 있고 “까마귀등”은 장재산 남쪽으로 뻗은 묘산이며 그 아래의 마을이 오봉동이다. 동쪽의 초량천 건너 부흥산은 절벽을 이루어 비단폭이 무늬와 흡사하며 이 산의 산정(山頂)을 사자등이라고 한다. 마을 뒷산에는 고분이 산재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이 곳은 상고시대부터 촌락이 형성되어 있었음을 짐착케 한다. 아주 오래된 연대미상의 세칭(世稱) 양씨총은 석물(石物)의 파편만 흩어져 있어 이를 주워 맞추어도 문구가 되지 않는다. 장재산 산정에는 천지(天池)라는 못이 있고 그 주변일대는 넓은 분지를 이루고 있어 수리조합이 있기 이전에는 이의 수자원을 앞들의 관개용수로 활용했다. 지명은 한자로서 두지로 사용하였는데 “까마귀가 비단을 즐긴다”하여 오사라 하고 또 “새우”는 “모래”가 있어야 한다고 하여 오사라 하였다. “새우등”과 “까마귀등”에 둘러쌓인 마을임으로 동명(洞名)이 이에 맞춘 것이라고 본다. 이곳 주민들은 오사를 오사로 개칭될 것을 원하고 있다. 고서(古書)에 의하면 오(烏)는 효조(孝鳥)요 영조(靈鳥)이며 인간세(人間世)를 미리 전하는 길조(吉鳥)라고 한다. 또 어전(御前)에서 입는 사모관대(紗帽冠帶)의 첫 이름은 오사모(烏紗帽)이니 이를 연유한 오사로 개칭할 것을 바라고 있는 것이다.

◆장개번덕 : 오사 서족에 있는 번덕.

◆장성거리 : 두듬걸 북쪽에 있는 길. 장승이 있었음.

◆천지못 : 오사 서쪽에 있는 못.

◆추동(楸洞) : 다솔사에서 약 2km 지점의 남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면소재지에서 3km지점이고 추천리의 중심지에 터전하고 있다. 옛날 부락 뒷산에 가래나무가 많이 있었던 연유(緣由)로 추동의 동명(洞名)이 붙여졌고 일명 “가래골”이라고 하였다. 봉명산의 주맥(主脈)이 동쪽으로 뻗다가 다시 두 갈래로 나누면서 황새봉(鶴鳥峰)과 무군산의 능선이 각각 매듭지어진 산기슭에 자리 잡은 동향의 아담한 마을이다. 1750년에 전주이씨의 선조가 정착지로 마련한 곳으로서 지금도 이씨성씨가 대종(大宗)을 이루고 있다. 마을 앞의 큰 샘은 갈마정(渴磨亭)이라 하는데 전설에 의하면 무군산의 싸움에서 이긴 군병(軍兵)이 춤을 추다가 목이 갈해 이 샘물을 마시고 칼을 갈았다 하는 뜻에서 이름 지어졌다고 한다. 또 인근에는 무덕산이 있고 그 일대에는 “안장설” “마구실” “장수골” 등이 있으나 숨은 전설을 못 엮어 냄이 유감이다. 정지정리와 수리시설, 교통 등 여건이 좋아 영농에 이상향이나 도시집중의 이농현상으로 거듭 농가가 줄고 있음은 안타깝기만 하다. 마을 뒤 고개의 “깨볶음재”는 임진왜란 때 왜병이 곤명 땅을 짓밟았을 적에 이 고개에서 조총을 ‘깨 볶듯이 쏘았다’ 하여 유래된 것이라 한다.

◆평평보 : 오사 동북쪽에 있는 보.



<자료출처:사천지명지>

추천리

Copyright (c) 1999 사천신문 Co.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