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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11.28 00:28

정곡리(正谷里)

◆본래 곤양군 곤명면의 지역으로서 그릇점이 있었으므로 점골이라 하던 것이 변하여 정곡이 되었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완사, 사창, 신기, 곡내 수변을 병합하여 정곡리라 해서 사천군 곤명면에 편입되었다. 지금은 완사, 신기 2개 마을로 구성되었다. 덕천강을 사이에 두고 금성리와 마주보고 있으며 1956년 정곡리가 3개 부락으로 분리하면서 물갓땀, 모래등, 구장터로 형성된 리동이다. 신작로가 나기 이전 구(舊) 장터 길목은 진주로 통하여 보행대로였으니 보부상의 집결지로 객주도 있고 하여 항시 사람이 붐벼 물물을 교환, 매매의 시장화가 되었던 곳이다. 6.25때 적의 선발대가 완사(浣紗)에 집결하자 도로변 20여호가 폭격으로 소실된 바 있다. 1962년 완사시장이 현재의 우시장으로 옮겨 부락의 전성을 이루다가 1968년 일반시장이 완사리로 다시 이전되고 우시장만 남아있다. 1967년 남강댐으로 구(舊) 장터 마을 전체와 농토 20여정보가 땜에 편입되었고 뒤 이어 1985년에는 정곡부락 전부가 수몰 지구로 편입됨으로써 전 마을이 철거이주 하여야하는 비운을 당하였으나 정부의 주선으로 전 가구가 곤명중학교 앞 들판에 이주케 되었다. 남강댐 사무소에서 막은 제방은 신기, 오한사, 정곡, 고월로 이어져 길이 2,500m를 이루고 있으며 특산물은 전국에서 가장 양질의 대마(大麻 : 삼)가 손꼽히고 있고 동한기에는 고추, 오이 등 하우스 재배도 성행하고 있다. 그러나 진양호의 확장으로 전체가 이주하고 중학교는 곤명초등학교로 이건하였다.

◆고월 : 완사 남쪽에 있었던 마을.

◆곤젖고개 : 곤명완사에서 서쪽으로 가는 국도에 조그마한 고개가 있으니 이름을 곤젖고개라 한다. 옛날에는 이 고개이름이 연젖고개였다고 하니 그 사연은 다음과 같다. 고려 말에 연젖고개 밑에 한 부자가 살았다. 사람됨이 인색하고 자신의 이익에는 어떠한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을 뿐 아니라 남의 희생도 아랑곳 하지 않으므로 원근주민으로부터 원망이 뒤따르는 인물이었다. 이 사람이 천상을 당하였다. 명당자리를 구하려고 많은 풍수지사를 초빙하여 좋은 자리를 물색 중 어느 날 홀연히 한 도사가 나타나 유택(幽宅)을 잡았는데 이름 하여 유두출지(乳頭出地)였다. 누구나 보아도 과연 명당자리로 보임으로 부자는 이 자리를 택하여 장례를 성대히 치루었다. 삼우(三虞)가 지나 도사가 떠나려고 하는데도 노자 한 푼 안 주며 하는 말이 명당이라면 곧 영험이 나타날 것인즉 일년 후에 오면 사례를 할 터이니 그때 다시 오라 하였다. 그러자 도사는 말없이 총총히 떠났다가 1년 뒤에 다시 찾아왔다. 그러나 이 부자는 도사에게 아직껏 영험이 없으니 산운(山運)이 돌아올 때까지는 사례할 수 없다고 하며 하룻밤 쉬고 가라는 청도 거절하며 밥 한 끼 대접도 없이 축출하고 말았다. 도사가 어찌 이 자의 인색함을 모르랴. 말없이 그 집을 나와 연젖고개에서 자리를 마련하고 앉아서 그 고개를 넘나드는 사람에게 한 푼씩 돈을 주며 이 고개이름은 연젖고개가 아니고 곤젖고개라 불러 달라고 부탁하면서 자기가 갖고 있는 백냥돈을 다 나누어 주었다 한다. 뒤늦게 이를 알아차린 부자는 고개이름을 연젖고개로 돌리려고 갖은 애를 썼으나 이미 잃은 인심을 돌릴 수 없이 끝내 곤젖(젖통이 골았으므로 젖이 나오지 않는 것을 말한다)고개가 오늘까지 이어졌다고 한다. 그 뒤 이 부자는 재산도 망하고 사람도 망하여 흔적도 없이 살아졌다고 전해 내려오고 있다. 이로부터 몇 백년이 지난 후 금성(金城) 합천이씨가 이 터를 잡아 선영을 입산 시키니 과연 명지(名地)로서 후손이 수백호로 크게 번성하며 살고 있다.

◆곤지고개 : 완사 서쪽에 잇는 고개.

◆돌고개 : 완사 동쪽에 있는 고개.

◆모랫등 : 상고(上古) 때 덕천강이 이곳으로 흘렀다하며 수류(水流)의 변천으로 이곳에 모래가 쌓여 마을이 생김으로써 유래되었다고 하나 일설은 조선조에 와서 완사역(浣紗驛)이 관마(官馬)의 둔소라 하여 미래등이라 한 데서 나왔다고도 한다.

◆모랫뜸 : 완사 동북쪽에 있는 마을. 백씨들이 많이 살았다 함.

◆부체꼴 : 완사 동남쪽에 있는 골짜기. 부처가 있었음.

◆사창(紗倉) : 완사 서남쪽에 있는 마을. 사창(社倉)이 있었음.

◆서실골안 : 곡내 서북쪽에 있는 마을.

◆수변(水邊) : 완사 북쪽에 있는 마을.

◆신기(新其) : 새터땀과 골안땀을 묶은 것이 신기리이다. 1938년 곡내 신기의 양부락으로 있다가 1956년 통합되어 신기리가 되었다. 골안땀은 신라시대부터 이미 마을이 있어 소씨가 살았다 하며 신라 때의 고분으로 보이는 큰 무덤 2기는 지금도 소시 무덤이라 불리어 지며 그 옛날 부호가 살았던 터를 지금도 열두대문(十二大門)터라 말하고 있다. 배 나무재에 서낭당이 있어 8.15해방 이전까지는 서낭당제를 모셨으나 지금은 조산의 흔적만 남아있다. 들 가운데 경충당이란 서당이 있어 완사 주위의 많은 후학을 가르쳤다 하며 이 일대를 ‘서재등’이라 불리어지고 있다. 사장터는 곡내천과 덕천강의 합수지점에 있었으며 무과응시자의 궁술연마장이었으나 지금은 논밭으로 흔적도 없다. 세종 때 설치된 완사역원의 장소가 불분명하나 신기의 “공터”라고 추측되기도 한다. 1960년 이 마을에서 사설 수력발전을 하여 농촌전화사업 이전에는 완사 지역의 가정에 전등불을 주어 종지불을 없애는데 한몫하였다. 1967년 남강댐으로 수곡방면의 이설도로가 신기 본촌으로 연결하게 되었으며 완사지역 상수도 배수장이 이곳에 설치되어 있다. 골안땀 입구의 느티나무는 수령이 400년으로 둘레가 5m이며 이 나무 밑은 골짜기로부터 내리치는 바람이 여름에도 오한증이 들 정도의 시원함을 줌으로 인근 촌로(村老)들은 한 더위에는 언제나 이곳에 모여 들었고 또한 목신제(木神祭)가 연례로 치러졌으나 지금은 굿 할 때만 제(祭)를 지내고 있다. 비닐하우스로 청과단지를 조성하여 속성공동출하(速成共同出荷)와 품질개량에 역점을 둔 작목반 조직이 있다.

◆와룡산 : 완사 남쪽에 있는 산.

◆완사(浣紗) : 곤명의 가장 번화지이며 시가화(市街化)된 곳이다. 곤명중학교, 완사지서, 곤명우체국, 보건진료소, 곤명지소, 농업협동조합, 곤명분소, 복지회관, 가축병원, 가축인공수정소, 완사시장 등이 있었으나 모두 이건 되었다. 부락은 시장통, 사창땀, 장성백의 세 땀으로 구성되었으며 조선조 세종(世宗) 때 완사역이 있었고 찰방(察訪)이란 관직이 관리하고 있었다. 그러나 모두 이건 하였다. 완사(浣紗)의 명칭은 옥녀봉 전설에 따라 “비단”을 짜서 씻었다고 한데서 나온 말이고 사창(社倉)땀은 조선시대 때 정부곡물 보관창고가 있었던 것이다. 장성백은 곤젖고개를 넘어가는 길목인데 거대한 장석이 세워졌던 곳이라 하여 나온 말이다. 문헌에 장성백 마을위에 “곤지못”이 있었으니 둘레가 4.444척이요 수심이 4척4촌이었다 하며 당시는 덕천강 물을 당길 염두도 못 내고 못물로서 물이 닿는 곳은 논으로 하고 나머지는 밭이었다 한다. 6 ? 25전란 때 가장 피해를 많이 입었던 곳으로 마을 3분의 2가 소실되어 폐허되었던 곳이다. 1920년에 본촌리 위에 덕천강에 보(洑)를 막아 당시 완사들 전역을 수답(水畓)으로 만들었으니 이 보가 유명한 서실보이다. 1925년 곤명수리조합이 생김으로써 보를 없애고 수굴을 내었으나 진양호의 확장으로 모두 없어졌다. 1964년에 완사평야가 경지정리되었고 1980년에는 소도읍을 가꾸기 사업으로 도시형 건물로 이뤄 졌으며 1981년에는 상수도 시설이 완비되어 신기, 완사, 정곡, 고월의 4개리가 사용권에 들었다. 용호사는 1965년 “장성백” 산중턱에 세워져 있다. 1986년 복지회관 주변 오천평을 택지로 조성하여 정곡부락의 집단이주 택지로 이루어졌다. 완사시장은 곤명을 비롯하여 수곡, 대평, 내동, 옥종, 북천, 곤양, 축동 등 8개면(面)의 농산물 집산지로서 물동교류가 활발하고 있다.

◆완사천(浣紗川) : 삼정리 원수천에서 시작하여 곤명의 중부를 관류(貫流)하는 준용(遵用)하천으로서 은사, 마곡, 송림, 성방, 작팔, 만지를 거쳐 옥녀봉 밑에서 덕천강에 합류되니 전장이 15km이다. 조동산에서 태봉의 명지를 이루어 세종(世宗), 단종(端宗)의 어태를 안치케 하였으며 조선 중종 때의 곤양군수 어관포가 선비들과 담론시영장(談論詩詠場)이였던 고반대는 태봉앞 위쪽에 있다. 완사천(浣紗川)의 유역에 산재된 명소 등을 소개하면, 송비산은 곤명에서 가장 높은 산이고 기우단 봉수대 등이 있으며 전설로는 삼정 백마산(白馬山)의 소장군과 송비산의 문 호랑이 삼성삼현의 길지(吉地) 선인독서의 혈(穴) 이여송의 산맥절단지 등이 있다.



<자료출처:사천지명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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